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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가볼만한 곳 노잼주의 인문여행(회덕향교, 동춘당, 남간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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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구 중앙로 215 (정동, 대전역)
역사명소, 여행작가, 추천여행

어서 와 대전 인문여행은 처음이지?

역사와 문화가 담긴 대전 가볼만한곳 세 곳을 찾아 다녀왔습니다. 다소 이런 여행은 노잼이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의미를 알고 보면 꽤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사실 8월 중순, 대전에서 인문여행 주제로 여행 강의가 예정되어 있었어요. 소규모 그룹 투어로 제가 가이드 역할을 하며 여행지를 다니는 일이었거든요.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뚫고, 답사까지 다녀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일이 취소됐습니다. ㅠ_ㅠ;;;

답사에서 끝나버린 여행이지만 기록 삼아 블로그에 남겨 봅니다.

1. 조선시대 마을 학교

대전 회덕향교

 

 

대전 대덕구 향교길에 회덕향교가 있습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교육기관이죠.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드는 제향의 기능도 함께 수행했습니다.

대전 회덕향교는 1406년 (태종6)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요. 대부분의 향교가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회덕향교 역시 조선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버려 1600년에 중건했으며 1812년에 크게 고쳐지어 오늘날에 이릅니다.

회덕향교 입구에 홍살문, 외삼문을 세웠고, 대문 안쪽 건물에는 중앙으로 이어지는 문이 있습니다.

대문 동쪽 건물에 전사청 (제향을 준비하는 곳), 서쪽에 서재 (공부를 하는 곳)을 배치했습니다.

건물 뒤편으로 가면 수업 공간인 명륜당이 있습니다.

명륜당 실내 벽에는 교육 지침과 향교의 연혁 등을 적은 글을 걸어 놓았습니다. 현재에도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명륜당 뒤쪽 10단의 계단 위를 올라가면 솟을 삼문으로 된 내삼문이 나옵니다.

내삼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성전이 나옵니다.

대성전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공자를 포함해 중국의 유현, 우리나라 18현 등의 위패를 모셔놓았습니다. 매년 2음력 2월과 8월에는 석전제를 지내고, 매달 삭망례를 올립니다.

조선시대 향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기숙사 제도를 운영했는데요. 화덕향교의 동, 서양재 기숙사)는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에 좌우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소실되고 터만 남아 있습니다.

Q. 여기서 잠깐 퀴즈! 조선시대에는 왜 향교에서 제사를 지냈을까요?

제사를 통해 이곳에 모신 성현들의 학문과 인격을 살펴보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서 향교 안에 제사 공간을 두었습니다.

대전 가볼만한곳 화덕향교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나왔더니 갑자기 엄청난 비가 쏟아집니다.

택시를 타고 동춘당으로 이동했어요.

 

 

2. 조선시대 양반가 고택

대전 동춘당 & 동춘당 고택

동춘당 공원에는 보물 209호인 대전 회덕 동춘당, 동춘당 종택, 소대헌 호연재 고택이 모여있습니다.

대전 가볼만한곳 하면 보통 한밭수목원, 이응노 미술관, 계족산 등이 대표적인데요.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면 동춘당 공원에 가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조선시대 송준길 고택 동춘당

조선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1606~1672)선생이 살았던 집입니다. 현재의 고택은 1835년에 중건한 모습입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一’자형 사랑채가 있습니다. 동춘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대청마루와 온돌방 등으로 구성됩니다. 꾸밈없이 수수한 형태와 단아한 모습, 우아한 지붕 곡선이 특징적이에요.

동춘당 종택

동춘당 뒤에 있는 안채에는 종택이 있습니다.

ㄷ자형으로 지어졌으며 사랑채, 안채, 사당 등으로 구성됩니다. 서쪽에는 부엌, 안방, 골방이 있고, 동쪽에는 건넌방, 부엌, 행랑방이 있습니다. 사랑채와 안마당 사이에는 내외담을 두어 안과 밖을 구분했어요.

종택에는 사당이 2개가 있습니다. 별묘에는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신위를 모셨고, 가묘네는 4대조 신위를 모셨습니다. 지금까지 제사가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고 해요.

임진왜란 이전 충청지역 상류주택의 모습을 통해 호화롭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검소하게 살아간 양반집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송준길 손자 부부가 살았던

소대헌, 호연재 고택

동춘당 공원에는 소대헌, 호연재 고택도 남아 있습니다.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 송병하가 1674년 분가해 고택을 지었고.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와 그의 부인 호연재 김씨가 옮겨 지은 집이 소대헌, 호연재 고택입니다.

이 고택은 조선시대 중기 충청지역 양반집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호연재 김씨가 누구인고 하니

호연재 김씨 (1681~1722)는 조선 후기 여류시인이자 안동 김씨로 고성 군수를 지낸 김성달의 넷째 딸입니다.

19세에 동춘당 송준길의 손자 소대헌 송요화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고 42세에 세상을 떠났어요. 이 집에서 생활하는 동안 틈틈이 한시를 지어 194편의 작품이 전해집니다. 그는 조선 후기 사대부가 여성이 지닌 절제된 감정과 사유를 시문에 담았습니다.

소대헌, 호연재 고택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 소대헌 : 크고 작음을 탓하지 말고 의연하게 살자는 뜻을 담은 큰사랑채

– 오숙재 : 항상 깨어있음을 뜻하는 작은사랑채

– 호연재 : 호연지기 (굽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바르고 큰 마음) 뜻을 담은 안채

– 사당 : 안채 뒤뜰에 위치한 송씨가묘

사진 속에 다락방 처럼 보이는 곳이 서고 입니다.

대전 인문여행 소대헌 호연재 고택
대문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큰 사랑채 (독서, 손님맞이 등)가 있고, 오른쪽에 작은 사랑채 (부모, 자녀의 거처)가 나란히 있습니다.

충청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일렬로 배치한 것이 특징입니다.

작은 사랑채 왼쪽 중문으로 들어가면 안주인 호연재 김씨의 생활공간인 안채가 나옵니다.

조선시대 여류작가하면 허난설헌, 황진이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충남지역에는 호연재 김씨가 있었습니다. 양반댁 안방마님으로 살며 조카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수많은 한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이름을 놔두고, 김씨라고 불렀을까요? 시대적 배경으로 미루어봤을 때 남편에 비해 아내가 부각이 되었던 것을 탐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약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반대로 호연재 김씨가 2020년을 살고 있었다면 잘나가는 작가가 되었겠죠. 시대를 잘 타고나는 것 또한 운인 것 같습니다.

동춘당 공원 (동춘당, 동춘당 종택, 소대헌 호연재 고택)을 꼼꼼히 둘러보고 나니 또 엄청난 비가 내렸습니다. (타이밍 참…)

택시를 타고, 우암사적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택시로 이동을 했는데 좌석에 고요한 택시라고 안내가 되어 있더라고요. 이 택시에서는 말하지 않고 조용히 가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청각장애인 기사님이 운전하는 친절한 택시라고 쓰여있더라고요.

3. 조선의 유학자 송시열 관련 사적

우암사적공원

 

 

우암사적공원은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흥농서당과 남간정사 등을 세워 제자들과 함께 학문을 연구했던 곳입니다. 우암선생을 추모하기 위한 종회사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

송시열은 인조 때 이조판서 등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지내며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한 북벌책을 강구했습니다.

현재 우암사적 공원 안에는 남간정사와 대전 소제동에서 옮겨온 기국정 등이 남아 있습니다.

남간정사는 송시열 선생이 유림과 제자를 모아 학문을 전수했던 곳입니다. 선생의 사후에는 유림들이 이곳에 모여 목판을 새겨 송자대전을 펴냈다고 해요.

남간정사 개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입니다. 늦게 갔더니 문이 닫혔습니다.

까치발을 들고 안쪽을 살펴봤어요. 남간정사는 흐르는 물 위에 건물을 지은 것이 특징입니다. 남간은 양지바른 곳에 졸졸 흐르는 개울을 의미하는데요. 비가 와서 흙탕물이 떠내려 오더라고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신발과 바지가 다 젖었습니다. ㅠ_ㅠ;;;

물소리를 들으며 바라보는 연못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하던데 날씨 좋은 날 다시 찾아와야겠습니다.

이렇게 폭우를 뚫고 대전 답사를 다녀왔는데요.

결국 이 일은 코로나 때문에 취소가 되어 교통비 한 푼(?) 받지 못하고 기약 없이 끝났습니다.

괜찮아요. 그동안 대전 여행을 하면 대표적인 여행지나 트랜디한 여행지를 찾아다녔는데요. 이번 답사를 통해 조선의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곳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뜻깊은 여행이었습니다. 🙂

(작성자 : 여행작가 박은하)